솔리이야기/좋은글·따뜻한글

중년의 삶 ,나의 학교 성적표

솔리스톤1 2010. 7. 25. 18:33
중년의 삶
    친구여!
    나이가 들면
    설치지 말고, 미운소리
    우는 소리, 헐뜯는 소리
    그리고 군소리, 불평일랑 하지를 마소.
    알고도 모르는 척,
    모르면서도 적당히 아는 척 어수룩하소
    그렇게 하는 것이 평안하다오   - 법정스님-
    친구여!
    상대방을 꼭 이기려 하지마소.
    적당히 저 주구려
    한걸음 물러서서 양보하는 것
    그것이 지혜롭게 살아가는 비결이오.
    친구여!
    돈, 돈 욕심을 버리시구려.
    아무리 많은 돈을 가졌다 해도
    죽으면 가져갈 수 없는 것
    많은 돈 남겨 자식들 싸움하게 만들지 말고
    살아 있는 동안 많이 뿌려서
    산더미 같은 덕을 쌓으시구려
    그렇지만 그것은 겉 이야기
    정말로 돈을 놓지지 말고
    죽을 때까지 꼭 붙잡아야 하오.
    친구여!
    옛 친구를 만나거든 술 한 잔 사주고
    불쌍한 사람 보면 배풀어주고
    손주 보면 용돈 한 푼 줄 돈 있어야
    늘그막에 내 몸 돌봐주고
    모두가 받들어 준다오.
    우리끼리 말이지만 이것은 사실이라오.
    친구여!
    옛날 일들일랑 모두 다 잊고
    잘난 체 자랑일랑 하지를 마오
    우리들의 시대는 다 지나가고 있으니
    아무리 버티려고 애를 써 봐도
    가는 세월은 잡을 수 없으니
    그대는 뜨는 해, 나는 지는 해
    그런 마음으로 지내시구려.
    나의 자녀, 손자, 
    그리고 이웃 누구에게든지
    좋게 뵈는 마음씨 좋은 이로 살으시구려
    멍청하면 안되오
    아프면 안되오
    그러면 괄시를 한다오
    아무쪼록 오래 오래 살으시구려. -법정 스님-

    나의 학교 성적표

    나의 고향은 경남 산청이다.

    지금도 비교적 가난한 곳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가정형편도 안되고
    머리도 안되는 나를 대구로 유학을 보냈다.

    대구중학을 다녔는데 공부가 하기 싫었다.
    1학년 8반, 석차는 68/68, 꼴찌를 했다.

    부끄러운 성적표를 가지고 고향에 가는 어린 마음에도
    그 성적을 내밀 자신이 없었다.

    당신이 교육을 받지 못한 한을 자식을 통해 풀고자 했는데,
    꼴찌라니...

    끼니를 제대로 잇지 못하는 소작농을 하면서도
    아들을 중학교에 보낼 생각을 한 아버지를 떠올리면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잉크로 기록된 성적표를
    1/68로 고쳐 아버지께 보여드렸다.

    아버지는 보통학교도 다니지 않았으므로
    내가 1등으로 고친 성적표를 알아차리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

    대구로 유학한 아들이 집으로 왔으니
    친지들이 몰려와 "찬석이는 공부를 잘 했더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앞으로 봐야제.. 이번에는 어쩌다 1등을 했는가 배.."했다.

    "명순(아버지)이는 자식 하나는 잘 뒀어.
    1등을 했으면 책거리를 해야제" 했다.

    당시 우리집은 동네에서 가장 가난한 살림이었다.

    이튿날 강에서 멱을 감고 돌아오니,

    아버지는 한 마리뿐인 돼지를 잡아
    동네 사람들을 모아 놓고 잔치를 하고 있었다.

    그 돼지는 우리집 재산목록 1호였다.
    기가 막힌 일이 벌어진 것이다.

    "아부지..." 하고 불렀지만 다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달려 나갔다.
    그 뒤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겁이 난 나는
    강으로 가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에
    물속에서 숨을 안 쉬고 버티기도 했고,
    주먹으로 내 머리를 내리치기도 했다.

    충격적인 그 사건 이후 나는 달라졌다.

    항상 그 일이 머리에 맴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7년 후 나는 대학교수가 되었다.

    그리고 나의 아들이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그러니까 내 나이 45세가 되던 어느 날,
    부모님 앞에 33년 전의 일을 사과하기 위해

    "어무이.., 저 중학교 1학년 때 1등은 요..." 하고
    말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옆에서 담배를 피우시던 아버지께서

    " 알고 있었다. 그만 해라.

    민우(손자)가 듣는다." 고 하셨다.

    자식의 위조한 성적을 알고도,
    재산목록 1호인 돼지를 잡아 잔치를 하신 부모님 마음을,

    박사이고 교수이고 대학 총장인 나는,

    아직도 감히 알 수가 없다.

    - 전 경북대 총장 박찬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