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웰 메이드 미술 드라마의 탄생
-바람의 화원, 사랑에 빛깔을 입히다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바람의 화원>은, ‘그림’과 ‘사랑’ 두 개의 단어로 요약된다. 동시대를 살았던 두 천재 화원의 치열했던 삶이 그대로 녹아 있다. 소설에서 드라마로 새롭게 변주된 <바람의 화원>을 들여다 봤다.
역사는 상상을 자극한다. 드라마 <바람의 화원>을 연출하기 전, 장태유 PD는 원작 소설이 가지고 있는 상상력에 끌렸다. ‘신윤복이 여자일 수도 있다’라는 발칙한 상상이 이야기의 모티프가 된 것처럼, 드라마 <바람의 화원> 역시 원작의 코드를 따라간다.
다만 원작과 다른 점이 있다면, 신윤복과 김홍도의 관계가 드라마에서는 ‘멜로’라는 끈으로 묶여 있다는 것. 장태유 PD는 “신윤복이 ‘여자’라는 것이 핵심 모티프다. 이런 설정이 지닌 가장 큰 장점은 멜로가 가능하다는 것이다”라며 “영화 <셰익스피어 인 러브>처럼 이 드라마도 역사라는 테두리 안에서 재밌는 러브스토리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한다.
역사에 실재했던 인물을 작품 속으로 끌어들이긴 했지만, 드라마는 온전히 상상과 허구에 의존한다. 두 명의 천재 화가 신윤복과 김홍도의 뜨거웠던 삶과, 그림 하나에 죽고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그림이 가진 위대함을 조명한다. 이 드라마에서 그림은 이야기를 부연하는 중요한 기능을 한다.
이에 대해 장태유 PD는 “신윤복과 김홍도의 명화는 역사 속에 실재하니까, 그들의 작품을 가지고 이야기를 구성했다”며 “그런 점에서 모든 것이 허구는 아니다”고 정리한다. 또 “동양화의 신비로운 면들을 보여주면서, 정치 사극이 아닌 멜로 사극을 해보고 싶었다”는 기획 의도를 밝힌다.
원작에서는 ‘신윤복이 여자였다’라는 점을 반전의 카드로 활용한 반면, 드라마에서는 처음부터 신윤복의 존재를 밝히고 이야기를 진행시키기 때문에 신윤복에 대해 상이한 접근이 원작과 드라마의 결정적 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야기의 전개 방식도 다르다.
이은영 작가는 “이 이야기는 역사책에 적히지 않은, 행간에 숨어 있는 이야기”라며 “이 드라마는 하나의 거대한 ‘거짓말’을 초석으로 깔고 시작하는데, 그것은 바로 신윤복이 여자라는 설정이다”라고 말한다. 역사를 고증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비틀어 보는 작가의 상상력이 곧 이야기의 시작인 셈이다.
인물의 재해석과 완벽한 시대 복원
<바람의 화원>은 신윤복을 여자로 상정한 팩션이다. 역사 속에 단 두 줄의 기록만 남긴 채 사라진 비운의 인물을 상상력으로 복원한 것이다. 따라서 역사 고증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었던 제작진은 김홍도와 신윤복을 드라마에 맞게 새로이 재해석했다.
이은영 작가는 “드라마의 신윤복 역할로 문근영 씨가 캐스팅되면서, 문근영 씨만의 개성이 덧붙여졌다. 어두운 과거의 비밀을 지녔기 때문에 내면에 깊은 슬픔이 잠재되어 있지만, 한편으로는 강인하고 밝게 살아가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 근영 씨를 통해 그림에 있어서만큼은 모든 것을 잊고 아이처럼 단순해지는 매력적인 캐릭터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또 “특히 홍도랑 농담을 할 때보다 정향이랑 있을 때, 머릿속으로 그려뒀던 신윤복의 느낌과 더욱 비슷하다”고 덧붙인다. 김홍도 역시 원작과는 차이가 있다. 원작에서 묘사된 김홍도가 다소 정적이고 윤복에 대한 질투의 감정이 느껴지는 캐릭터였다면, 드라마의 김홍도는 여유롭고 호방하며 윤복에 대해 호의적이다.
이에 대해 이은영 작가는 “김홍도 캐릭터에 박신양 씨의 개성이 더해져 훨씬 쾌활하고 에너지 가득한 캐릭터로 탄생했다”고 말한다. 결국 소설 속 김홍도 캐릭터가 분위기 있고 고뇌하는 예술가의 모습이라면, 드라마의 김홍도는 조금 더 동적으로 변했다고 할 수 있다.
인물과 스토리는 상상으로 가공됐지만, 소품은 거의 고증에 가깝다. 드라마의 시대적 배경인 정조 시대는 당시 청나라의 영향을 많이 받던 시기였고, 문물의 유입이 왕성했다. 장태유 PD는 “전부 다 허구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진실성이 있으면 재미가 두 배로 된다”며 소품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드라마 소품은 장태유 PD와 이종목 교수가 발품을 판 결과로, 중국 북경의 골동품 시장을 누빈 끝에 얻어낸 귀한 것들이다.
“당시의 것과 최대한 가깝고 비슷하게 입증”하기 위해 장태유 PD는 보이지 않는 작은 소품 하나에도 신경을 쏟았다. 2,000만 원이 넘는 벼루, 몇 백만 원을 호가하는 김홍도의 안경부터 종이, 붓, 악기, 김조년의 부채, 도화서 벽제가 들고 다니는 호두까지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소품이 없을 정도다. 이처럼 실제에 가까운 소품들이 드라마에 활용되면서 장태유 PD가 강조한 진실성도 부각되고 있다.
그림, 또 하나의 캐스팅
관건은 그림이다. “그림은 박신양 문근영 다음의 캐스팅이다”라는 장태유 PD의 말처럼, 신윤복과 김홍도의 그림을 비롯해 완벽하게 재현된 동양화를 보는 것이 <바람의 화원>의 중요한 관람 포인트다. 제작진은 당시의 그림을 생생하게 재현하기 위해 이화여대 동양화과 이종목 교수팀을 투입했다.
장태유 PD는 “화가가 그림 그리는 모습을 지루하지 않게 보여주는 것이 이 드라마의 컨셉트 중 하나다. 그게 재미없으면 드라마를 못 본다. 그 순간만큼은 재미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 “두 천재 화가가 그림 그리는 순간은, 보통을 초월하는 뭔가가 있다. 바로 스페셜 모멘텀이다”라며 드라마 속 그림의 의의에 대해 짚는다. 특히 신윤복과 김홍도가 그림을 그리는 장면은 기발한 CG와 독특한 촬영 등으로 차별화를 시도했다.
장태유 PD의 표현에 따르면 “600만 불 사나이가 ‘두두두’ 하면서 특별한 능력을 발휘할 때의 모습”이다. 장 PD는 “붓이 화선지를 스치는 순간의 소리, 목탄이 부러지는 효과, 피사체만 보이는 특별한 시선, 그림에 대한 상상력 등이 그들의 특별한 능력을 부각시키는 순간이다”라는 말로 그림의 비중을 강조한다.
그림 그리는 작업에도 많은 시간이 할애됐다. 10화에 나온 ‘어진화사’의 경우 두 달간 작업한 끝에 완성됐고, 1화에 잠깐 나온 <송화맹호도>와 <미인도>는 한 달이 소요된 프로젝트였다. 무엇보다 제작진은 그림을 이야기‘화’(化)하는 데 주력했다.
이은영 작가는 “신윤복이 그림만 그렸다 하면 문제가 되는데, 이것은 정조의 개혁과도 맞물려 있고, 또 근본적으로 예술 자체가 금기에 대한 도전을 통해서 발전되어 왔다. 그런 점에서 이 이야기가 사극이지만 현재성을 가진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또 “금기에 대한 도전은 성장하는 모든 사람들이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겪는 문제이기 때문에, 보편성을 가질 수 있는 이야기”라고 말한다. 지용진 기자
● <베토벤 바이러스>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까칠한 지휘자, 드라마 세상을 장악하다
모험에 가까웠던 음악 드라마가 기대 이상의 반응을 얻었다. 싸가지는 없지만 공정한 리더 ‘강마에’는 종교적인 신드롬을 일으켰고 클래식 음악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곧 막을 내리는 <베토벤 바이러스>는 드라마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
<오버 더 레인보우> 이후 메디컬 드라마를 준비하고 있던 홍 자매는 미국 드라마 <하우스>의 ‘하우스 박사’ 캐릭터에서 영감을 받아 대본을 준비했다가 그 작품이 엎어지는 바람에 다른 소재를 찾고 있었다. ‘클래식 음악’에 대한 아이디어는 이재규 PD에게서 나왔다. 운명처럼 만난 프로듀서와 작가들은 하우스 박사 같은 캐릭터가 나오는 클래식 음악 드라마를 만들어보기로 결정했다.
홍 자매는 주연배우로 ‘싸가지 없는 캐릭터를 연기해도 여자들에게 미움 안 받을 배우’라며 김명민을 추천했다. 의견에 동의한 PD는 김명민에게 대본을 보냈고 사흘 만에 승낙을 받았다. 지휘자 매형을 두어서인지, 김명민은 마에스트로 역할을 한 번쯤 꼭 해보고 싶었다는 소감을 곁들였다. 이 완벽주의자 배우는 PD의 친구인 서희태 예술감독에게서 열심히 지휘를 배웠다. 그리고 7월 14일 촬영장에 ‘진짜’ 지휘자가 되어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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