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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외수 씨는 산문집 <감성사전>에서 아파트를 “인간 보관용 캐비닛”이라고 표현했다. 층층 박스 안에 다시 작은 박스가 나열된 획일적 구조를 풍자한 것이다. 아파트가 아닌 곳에 사는 이보다 아파트에 사는 이가 더 많은 현실을 생각해보면 다소 서글픈 이야기다. 하지만 아파트도 얼마든지 개성 넘치는 주거 공간으로 변모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집이 있다. 잠실 5단지, 지은 지 30년이 넘은 아파트라고는 믿기 힘든 집, 바로 인테리어 디자이너 정은진 씨의 집이다. 재개발을 앞두고 있어 언제 이사할지 모르는 아파트. 그의 집은 들어서는 순간 스타일과 분위기를 논하기에 앞서 “아, 이런 집도 있구나!”라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이는 단순히 근사한 인테리어 덕분만은 아니다. 한국과 일본 미술 시장에서 찾은 보석 같은 신진 작가들의 미술 작품과 전통 고가구가 어우러진 집은 집주인의 취향과 감각, 크고 작은 일상이 따뜻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유난히 그림을 좋아하던 학창 시절, 대학 졸업과 동시에 결혼해 파리 유학을 떠난 정은진 씨는 전공인 불문학 대신 인테리어 디자인을 공부했다. 7년 후 귀국해 프리랜스 인테리어 스타일리스트로 활동하던 그는 2007년 대학에서 안식년을 맞은 남편과 함께 다시 일본 유학을 떠났다. 한창 미술 시장이 활성화되던 무렵이었다. “일본에 살던 3년 동안 좁은 공간에 대한 내성이 생겼나 봐요. 널찍한 주상복합 아파트에 살다 바로 30평대 아파트로 이사하라면 망설였겠지만, 작은 공간에서 복작복작 지낸 경험 때문인지 오히려 편할 것 같더라고요. 어차피 올해 스무 살 된 큰아이도 유학 중이고요. 오래된 단지인 만큼 녹지가 많다는 게 마음에 들었어요.” “그냥 살기는 난감하고 레노베이션을 하자니 인테리어를 바꿀 때드는 만만치 않은 비용과 나중에 버려질 폐기물이 아까웠어요. 그래서 생각해낸 묘안이 바로 ‘마이너스 데커레이션’이에요. 구조나 마감재를 더하기보다 걷어내는 작업에 중점을 두는 작업이죠.” (왼쪽) 지은 지 30년이 넘은 아파트. 인테리어 디자이너 정은진 씨 집은 대문 밖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개성 넘치는 광경이 펼쳐진다. 프랑스 유학 시절 구입한 폴트로나 프라우의 가죽 소파와 인더스트리얼 빈티지 스타일의 조명등이 어우러진 거실은 평소 둘째 도헌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다. 1 현관 전실. 정면으로 보이는 작품은 사진작가 백승우 씨의 ‘리얼월드’ 시리즈다. 2 히로시 스키모토 Hiroshi Sugimoto의 사진 작품과 도자, 반닫이가 어우러진 작은방의 코너 공간. 그 너머로 주방이 바라보인다. 3 집 곳곳에는 소반, 반닫이, 서안 등 고가구가 많다. 시어머니께 물려받은 것. 아이 얼굴을 표현한 고레히코 히노 Korehiko Hiino의 판화와 노세환 씨의 사진 작품을 매치했다. 4 정은진 씨는 공간이 레이어드되는 한옥의 ‘중첩’ 현상을 집 안에 들이고 싶었다. 거실 너머 또 하나의 작은 거실이 펼쳐진다. 꼭 처마가 있어야 한옥인가? 오래된 아파트를 개조할 때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는 바로 천장고를 높이기 위해 천장의 골조를 그대로 드러내 노출하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 이 집의 가장 큰 특징은 ‘빼기’요, 두 번째 특징은 ‘노출’이다. 이는 노출 콘크리트를 마감재로 사용하는 것과는 다른 개념이다. “인더스트리얼, 빈티지…이런 현대적 스타일을 만들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그냥 ‘자연스럽다’는 느낌을 내기 위해 걷어내고 비워내는 방식의 ‘노출’을 선택했 어요. 수십 년 동안의 세월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겹겹의 벽지를 떼어내는 작업만 무려 일주일이 걸렸죠. 불리고 벗기고를 반복하니 회벽의 말간 속살이 드러났어요. 거실 한쪽 하얀 벽 역시 페인팅을 칠한 게 아닙니다. 도배하기 전 밑 작업인 퍼티 작업을 한거죠.” (왼쪽) 작은방의 문을 떼어내고 벽을 일부 털어내니 복도에서 주방과 거실이 바라보이는 매력적인 구조가 되었다. 그래서일까, 노출 콘크리트가 무겁거나 부담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주방이 딸려 있는 리빙 다이닝 룸은 천장을 털어내니 윗집의 배관이 그대로 드러났는데, 이 역시 자연스러운 장식 역할을 한다. 마지막으로 벽을 ‘노출’했다. 리빙 다이닝 룸 옆 작은방에 거실을 만들었는데, 복도로 통하는 문은 떼어내고 거실 쪽 벽면 중 일부를 털어내니 복도와 주방, 거실로 연결되는 구조가 더욱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룬다. 한옥아파트 인테리어,흙집,황토방,전원주택,목조주택,황토주택 기능성천연마감재 솔리스톤1688-0367 www.soliston.kr 황토판재,규조토,백토, 흑운모,황토,옥,일라이트 천연마감재 대리점모집 솔리스톤 Tel: 1688-0367 한옥인테리어,황토방꾸미기기,전원주택,고급리모델링
“한옥에서 영감을 받았다면 믿으시겠어요? 저는 한국적 모티프를 좋아해요. 한복 디자이너 차이 김영진 씨 작업도 좋아하고(평소 친하게 지내는 정은진 씨를 <행복>에 소개해준 이도 바로 김영진 씨다), 장응복 씨의 텍스타일도 즐겨 사용하지요. 일본 가기 전에는 한옥 문화원에 다니기도 했어요. 한옥이라는 공간이 뿜어내는 오라가 좋아요. 불편함의 미학인 한옥의 동선, 창문을 통해 보이는 중첩 등 굳이 모양내지 않아도 공간 자체에 스며 있는 정갈한 멋과 깊이가 느껴지잖아요.” 거실은 온 가족이 모이는 곳이자 때론 외부 손님을 맞이해야 하는 사랑채다. 그런 이유로 지금까지의 거실은 보이기 위한 공간으로 활용한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정은진 씨가 연출한 거실은 철저히 가족의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 필요에 의해 디자인한 공간이라는 점이 조금 다르다. 그러고 보니 주방 옆에는 식탁도 없다. 처음에는 가죽 소파 자리에 유행하는 빅 테이블을 두었는데, 손님을 초대할 때 빼고는 잘 앉지 않게 되더라는 것. 주방과 함께 있는 메인 거실에는 TV를 치우고 소파와 오디오 기기만 두었더니 낮에는 주로 둘째 도헌이랑 마주 앉아 책 읽는 공간으로 변모했다. 부엌은 주부에겐 거실만큼 특별한 공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늑하고 편리해야 하며 취향과도 잘 맞아야 한다. 부엌을 디자인할때 가장 먼저 결정하는 부분은 브랜드 제품을 사용할 것인가, 맞춤 제작 제품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아무래도 브랜드 제품은 가격이 높고, 인조 대리석을 선택하자니 마뜩잖다는 정은진 씨. 그래서 선택한 것이 거푸집에 시멘트를 부어 현장에서 뚝딱 만든 아일랜드 조리대다. 보통 다른 집에 커다란 아일랜드 조리대를 시공할 때는 이론상으로만 편하다고 얘기했는데, 실제 사용해보니 그렇게 편리할 수가 없단다. 무엇보다 식사 준비를 하면서, 설거지를 하면서 가족과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 한쪽 벽에 수납장을 짜 넣고 냉장고 등 모든 가전제품을 매입하니 집은 한결 정돈되어 보이지만 수납장이 턱없이 부족했다. 아일랜드 조리대 아래도 그릇장을 추가하고 한쪽에 콘솔처럼 폭이 좁은 수납장을 짜 넣어 해결. 그릇 수납장이 깊을 필요는 없다는 설명을 덧 붙인다. 가장 큰 방을 아이 방으로, 가장 작은 방을 부부 침실로 사용한 발상 전환 공간 배치도 재미있다. 침실에는 그저 커다란 침대와 사이드 테이블, 은은한 조명등 정도가 전부다. 침실은 온전히 쉬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다는 그는 결 고운 한지 벽지로 마감하고 작은 선반을 벽에 달아 미니 사이드 테이블로 활용한다. 1 오로지 휴식하는 침잠의 공간, 침실. 한지 벽지를 발라 더욱 고요하고 아늑하다. 2 후드를 생략한 주방 벽면에도 작품을 걸었다. 이강욱 씨의 추상 작품. 3 책상처럼 높은 테이블을 두어 부부가 나란히 앉아 TV를 보거나 일을 한다. 서류꽂이, 선반이 더해진 테이블은 맞춤 제작한 것. 바퀴가 달려 이동이 간편하다. 4 아이 방 한쪽에 마련한 책 읽는 공간. 박스 형태로 수납장을 짜고 매트를 깔아 데이 베드로 활용한다. 5 공간에 포인트를 주는 보라색 유화 작품은 일본의 신예 작가 신타로 오하타 Shintaro Ohata의 처녀작. 6 아일랜드 조리대 아래에는 정수기, 밥솥 등 가전제품을 수납할 수 있도록 공간을 마련했다. 그림 걸어주는 여자 그의 집을 이야기할 때 집 안 곳곳에 걸어둔 그림이나 사진 작품을 빼놓을 수 없다. 작품의 위치는 치밀하지 않다. 높이도, 모양도 제각각이다. 주방 환풍기 옆에도 동그란 추상화가 걸려 있을 정도! 그는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유학 시절부터 미술 작품을 하나씩 모아온 컬렉터다. 이동재, 신동원, 서상익, 백승우, 이강욱, 노세환 씨 등 주로 국내 작가와 히로시 스키모토, 고레히코 히노 등 일본 작가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그가 그림을 선택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투자를 목적으로 하는 컬렉팅이 아니어서 작품을 볼 때는 오로지 취향과 집에 걸었을 때의 이미지를 먼저 고려한다. 뮤지션 존 레넌을 워낙 좋아하는 그는 이동재, 서상익 작가의 존 레넌 작품을 마주 보게 배치했다.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인 남편과 두 아들은 그림을 바꿔 걸어주면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좋아한단다.
“문화가 갑자기 생기는 게 아니거든요.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바닥에 작품을 턱 놓아두었어요. 아이들 눈높이에 맞게요. 조심해야한다고 주의를 주니 식당에서도, 미술관에서도 조용하죠. 둘째 아이는 작가 작업실에 함께 놀러 가거나 전시회에 자주 데려가니 남다른 질문을 해요. 창의력은 물론 섬세한 감수성까지 다른 거죠.” 그림이 있으면 집이 행복해진다고 단언하는 정은진 씨. 그림은 보통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 생각하지만,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직접 ‘사보는 것’이라고 조언한다. 하다못해 아트 숍에서 파는 포스터라도 사서 걸어볼 것. 투자 가치 따위는 생각하지 말고 내 감성에 어울리는 그림, 내 가족이 좋아할 그림을 한번 골라보자. 사실 ‘잇 백’ 하나 덜 사면 되는 일 아닌가. 주부 스스로 즐겨야 아이도 즐기고 남편도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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