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이한 교회 건축양식
세계적으로 디자인 및 건축양식이 띄어나면서 독특한
교회&성당들을 대상으로 best순위를 정해 놓은 것입니다.
1.일본 하라쥬쿠에 있는 미래형 개신교 교회로써
동경에 위치하고 있으며 2005 년 처음 디자인 회사에 의해 공개됐습니다.
2.성 바실 성당 - 붉은 광장의 다채로운 교회로써
러시아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에 위치해 있으며
형형색색의 주먹코 돔 성당으로 양파라는 이름의 테이퍼 돔입니다.
3.아이슬란드의 Hallgrimur 교회
74.5 미터에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높은 건축 구조입니다.
4.Temppeliaukio - 반석교회
헬싱키에서 현대 건축의 감동적인 작품으로 알려져 있으며
구리와 철사로 만든 천장이 내장되어 있습니다.
5.브라질의 수도에 있는 브라질리아 대성당
구조 자체가 동일한 콘크리트 16개의 기둥으로 조립되어 있습니다.
6.노르웨이에서 가장 잘 보존된
목조구조의 Borgund 교회 입니다.
7.콜롬비아 남부에 위치한 라스베 Lajas 성당으로
Guaitara 리버의 계곡에 1916년에 고딕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성모 마리아의 신비에 싸인 아기를 들고 있는 그림이
동굴의 벽면에서 발견됐다고 전해집니다.
8.세인트 요셉 교회로써 골드 돔형 지붕으로 알려진 교회
비잔틴 스타일의 벽화와 13 개 골드 돔형 지붕은
가장 큰 중앙 돔으로부터
열두 사도들과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9.Ru?ica 교회
100 여년동안 터키의 화약 저장소로 사용했으며
총알,탄피,도검류등을 만들던곳이었는데
1920 년 1 차 세계 대전 이후 재건했다.
10.프랑스 바위절벽에 위치한 예배당 세인트 - Gild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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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우리의 교회건축을 생각한다
정시춘 교수(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 정주건축연구소 대표)
다양한 분야의 기독교 예술 중에서도 특별히 교회건축은 교회 사역을 위한 필수적인 도구이며 필연적인 환경으로서, 교회의 사역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교회예술이다. 교회건축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역의 거점이며, 하나님 백성들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의 구심점이기 때문이다. 부르심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거기서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고 훈련과 교제를 통해 에너지를 충전 받는다. 또한 교회건축은 기독교와 교회를 세상에 드러내는 상징이기도 하다. 따라서 교회건축은 하나님의 창조적 소명 안에서 하나님께 응답하고 그분을 깨닫게 하며, 교회의 사역을 돕는 도구로서 기독교 예술적 가치를 지녀야 한다.
한국의 교회건축은 선교 초기에 선교사들에 의해 수입된 서양의 고딕적 양식의 시대를 거쳐 6.25전쟁 후 폐허로부터 거의 임시적 거처로서의 교회당들을 지었으며, 특히 7~80년대의 교회 성장기에는 엄청난 수의 교회당들을 건축하였다. 그러나 이 시기에 건축된 교회당들은 대부분 급속도로 증가하는 예배인원을 수용하기 위해 공간의 양적 요구를 충족시키는데 급급하였으며, 따라서 교회 예술로서의 창조성은 말할 것도 없고, 기술적으로도 매우 부실하게 지은 건들들이었고, 아직도 서양 고딕적 양식의 건물들을 조악하게 모방한 건물들이었다.
이러한 현상은 다양한 원인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는 교회와 건축가들의 교회건축예술에 대한 이해부족과 창조적 소명감의 결여, 그리고 건축 신학 부재로부터 기인한다고 판단된다. 따라서 필자는 이 글에서 건축예술의 본질에 입각하여 교회건축예술의 전제와 그 특성을 논하고 이를 바탕으로 오늘날 한국 교회건축의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미래의 교회건축의 실천과제를 제시해보려 한다.
1. 교회건축예술의 전제
건물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삶을 위한 공간을 확보할 목적으로 건축된다. 따라서 그 공간은 그 목적에 합당하게 기능적이어야 한다. 또한 그 공간은 그 안에서 활동하는 인간의 안전성을 담보해야 하고, 자본의 효율적 사용을 위해 경제적으로 지어져야 한다. 이러한 건물의 기능과 안전성, 그리고 경제성은 예술가의 자유로운 창조성을 기반으로 하는 예술로서의 건축이 가지는 제약이기도 하다. 교회 건물 역시 다양한 특성의 활동들을 위한 공간을 포함하며, 그 안에서 활동하는 교인들의 안전을 담보해야 하고, 경제적으로 지어져야 하기 때문에 그 창조적 제약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1) 기능
건축의 기능은 공간의 효율성, 편리성, 쾌적성의 문제로서 그 공간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활동에의 적합성에 관련된다. 공간 사용자로서의 인간은 신체적, 정신적, 심리적, 행태적, 사회적으로 다양한 특성을 가진다. 특히 교회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점에서는 모두 같지만 나이, 성별, 사회적 신분, 교육의 정도, 경제적 능력 등 세상적 가치기준에서는 매우 다른 사람들이 함께 모인다. 이러한 인간의 특성들은 인간공학, 행태학, 심리학, 사회학 등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학문분야들의 연구 결과로부터 얻어질 수 있다. 한편,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활동들도 다양한데 그것은 예배와 기도, 교육, 교제, 선교, 봉사 등 하나님을 위한 단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이루어지지만, 내용에서는 매우 다르다. 따라서 교회의 공간들은 그 활동들의 특성에 적합하게 디자인되어야 한다.
2) 내구성과 안전성
건축예술은 그 건축 재료의 내구성과 구조적 안전성 그리고 유사시 재난으로부터의 안전성을 확보하는 것을 전제로 이루어진다. ‘내구성’은 건물의 구조를 이루는 재료 및 마감재료의 내구성을 의미한다. 건물에 사용되는 재료는 건물의 구조적 성능과 내구성에 관계되기도 하지만, 건축의 형태와 공간에도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구조적 안전성’의 문제는 건물의 자중과 적재하중 그리고 지진이나 바람 또는 눈 같은 외부의 힘에 대해 안전하게 저항하는 구조 역학적 문제와 시공의 품질 등 건축기술의 문제이다. ‘재난으로부터의 안전성’의 문제는 주로 화재 시에 신속, 정확하게 화재를 탐지하여 경보하고, 소화(消火)하며,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게 하는 문제이다. 대규모 집회가 이루어지는 교회에서 이러한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3) 경제성
하나의 건물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엄청난 비용이 투자되어야 한다. 따라서 건물은 기능성과 안전성을 확보하는 한 경제적으로 지어져야 한다. 더욱이 이윤을 추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사회의 기업들과는 달리 교회는 교인들의 헌금으로 운영된다. 교회건축에서 전 교인이 오랜 기간 동안 합심하여 모든 건축헌금이 경제적으로 사용되지 못한다면, 그만큼 자금을 필요로 하는 교회사역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건축의 경제성은 단지 공사비, 유지관리비 등 직접적인 비용만이 아닌 건물의 수명, 공간의 유용성, 문화 예술적 가치, 홍보적 가치 등 간접비용을 포함한 다각적인 관점에서 검토되어야 한다.
2. 교회건축예술의 특성
앞서 말한 기능과 안전성, 경제성의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해서 모든 건물이 건축은 아니다. 우리가 매일 만나고 이용하는 우리 주위의 대부분의 건물은 건물(building)일 뿐 건축(architecture)은 아니다. 건축은 예술의 차원으로 승화된 건물을 말한다. 즉, 하나의 건물이 건축가의 창조적 의도를 가지고 인간에게 즐거움과 감동을 줄 때 우리는 그 건물을 ‘건축’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건축은 인간의 활동을 위한 장소이며 동시에 오랜 시간동안 인간의 사회 속에 그 삶의 환경으로 존재하면서 인간에게 많은 영향을 준다. 따라서 그것은 그 자체로서 인간의 문화이며 사회적 책임을 가진다.
이러한 건축은 기본적으로 인간, 대지, 그리고 주변환경에 관계된다. 건축은 인간의 기능적 목적을 위해 존재한다. 따라서 건축은 인간의 모든 특성 즉, 그의 신체, 행동, 심리, 지각, 인식, 사상적 특성에 적합하게 반응해야 한다. 대부분의 건축에서 인간의 특성은 집단으로서의 사회적 특성을 포함한다. 곧 건축은 실용예술이다. 또한 모든 건물은 지구의 중력에 저항하며 구조적으로 안전하게 대지 위에 뿌리박고 서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대지예술이라고 말할 수 있다.
건물은 물리적으로는 물론 감각적으로도 중력의 힘에 대한 그 반응을 포함한다. 중력에 대해 긴장감을 표현하는 건물은 아름답다. 또한 건물은 중력은 물론 빛, 바람, 계절의 변화, 날씨의 변화 등 자연의 힘에 대해서도 반응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건축은 힘의 예술이기도 하다. 또한 건물은 자연 또는 도시구조의 다른 구성체(건물)들과 함께 존재하고 지각된다. 때로는 그들을 배경으로 존재하고, 때로는 그들과 함께 보다 더 큰 환경을 조성한다. 따라서 건축은 환경예술이기도 하다.
한편, 특별히 교회건축은 영성적 예술이다. 교회의 존재 자체가 영적 존재이신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되며, 교회 공동체의 모든 활동은 하나님의 임재와 인도하심 속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따라서 교회건축은 하나님의 임재와 인도하심을 느끼고, 하나님의 섭리하심을 깨닫도록 도와주는 공간이어야 하며, 이것은 인간의 문제이며 동시에 신학적인 문제 곧, 영적인 문제로 귀결된다.
또한 교회건축은 공동체적 예술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여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공동체로서, 교회의 모든 사역에서 그 공동체 회원들은 함께 한다. 그들은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고, 함께 훈련받고, 서로 교제하며, 함께 세상에 복음을 전하고 세상을 섬긴다. 교회 건축은 이 공동체의 목적과 생각과 활동을 담고 표현한다. 이러한 건축은 그 안에 특별한 기능을 담기 위한 ‘공간’과 이를 둘러싼 외피(外皮)에 의해 형성되는 ‘형태’로 이루어지는 예술이다. 교회건축예술 또한 기본적으로 이러한 공간과 형태를 통해 창조된다. 따라서 그것은 공간예술이며, 형태예술이기도 하다.
1) 공간예술로서의 교회건축
건축의 ‘공간’은 건축예술이 다른 예술들과 구별되게 하는 건축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요소이다. 건축의 공간은 바닥과 벽 그리고 천장으로 구획된 비어있는 허공이다. 이러한 건축공간은 하나의 오브제로 보이지는 않으나, 바닥과 벽 그리고 천장에 의해 형상을 가지고 지각된다. 또 건축공간의 형상 자체는 고정되어 있지만, 그 안에서 그 공간을 지각하는 사람의 위치와 움직임에 따라 지각되는 공간의 형상은 변화한다. 아름다운 공간은 그 안에서 움직이는 관찰자에게 크고 작음, 넓고 좁음, 높고 낮음, 어둡고 밝음의 대비를 통해 공간의 운율과 특별한 감동을 유발시킬 수 있다. 그래서 공간은 자주 음악과 비교된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나 철학자 쉘링 그리고 프랑스의 시인 발레리가 건축을 음악에 비유한 것도 바로 건축의 공간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운율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을 인간이 정지되어 있는 동안 흐르는 시간예술이라고 본다면, 운율을 가지고 구성되어 있는 정지된 건축공간은 사람의 움직임에 의해 감상되는 시간예술이기에, 건축을 4차원의 시간·공간예술이라고도 말한다. 따라서 공간의 중요성은 인간의 삶의 환경으로서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활동들을 보다 더 편리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실용적인 의미에서만큼, 그것이 건축예술의 핵이라는 의미에서도 똑같이 강조된다.
이러한 공간예술로서의 교회건축은 교회공간 안에서 교인들의 사역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교회당의 출입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선 교인들에게 로비는 그들을 환영하는 공간이어야 한다. 여기서 예배공간에 이르는 과정 공간은 예배자로 하여금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마음을 준비시키는 공간이어야 한다. 예배실의 출입문을 통해 예배공간으로 들어서는 예배자들의 눈에 가득 채우는 예배실의 광경은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충만하신 공간이어야 하며, 거기서 예배자로 하여금 하나님을 만나고 말씀을 듣고 주님의 만찬을 나누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하여야 한다. 하나님 앞에 무릎 꿇어 기도하게 하는 기도실, 성도의 교제를 북돋우어주는 친교실 등도 똑같이 교회건축 예술의 대상이다. 그것들은 건축가가 시나리오를 만들고 연출하는 하나의 창조적 드라마이며 시간·공간예술이다.
2) 형태예술로서의 교회건축
형태예술로서의 건축은 자주 3차원의 시각예술인 조각과 비교된다. 둘 다 시각적 오브제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그러나 건축은 조각과 달리, 건물과 사람의 상호 위치적 관계에 따라 즉, 사람이 멀리서부터 건물에 접근해 오는 동안 또는 건물의 주변을 거니는 동안 변화되면서 지각된다. 원거리에서 바라보는 건물은 하나의 오브제로서, 조소적(彫塑的)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건물에 접근하여 그 앞에 서서 바라보면, 우리는 건물의 한 면(面) 만을 볼 수 있게 되어 건축을 하나의 회화처럼 지각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입구를 통하여 건물의 내부로 들어서면, 드디어 건축은 공간으로 나타난다. 이처럼, 건축은 관찰자의 위치에 따라 서로 다른 3개의 지각단계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건축은 모든 입체예술과 같이 빛에 의해 지각된다. 그러나 건축은 그 빛을 통해서 단지 지각될 뿐만이 아니라 빛에 의해 변화되고 강조되고 연출된다. 따라서 건축은 빛의 예술이다.
3) 문화로서의 교회건축
건축은 인간의 삶을 담는 그릇이다. 건축은 한 국가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환경 속에서 태어난다. 따라서 건축은 지역의 특성을 반영한다. 건축의 형태와 공간은 지역의 기후와 자연지형, 풍습과 전통, 그리고 그 지역사회 구성원들의 특성과 그 사회의 가치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즉, 문화를 인간의 삶의 모습이라고 정의한다면, 그 삶을 담는 건축공간은 그 시대, 그 지역의 문화를 총체적으로 표현한다. 하나님 백성 공동체의 집으로서의 교회건축은 그 시대, 그 지역과 장소에서 그 교회 공동체가 추구하는 목적과 생각 그리고 실천으로서의 활동들로 이루어지는 교회의 문화를 담고 표현한다.
4) 환경으로서의 교회건축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시 속에 살고 있다. 이러한 도시는 수많은 건물들로 이루어진다. 태어는 곳도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곳도 대부분의 일터도 건물의 내부공간이며, 인간의 일생의 대부분이 건물들로 이루어진 환경 속에서 살고 있다. 따라서 사람들은 그러한 건축 환경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고 산다. 건축은 사람들의 행동양식을 규정할 뿐만 아니라, 사고와 감성을 자극한다. 따라서 건축은 인간의 삶을 더욱 활력 있게 하기도 하고 위축시키기도 하며,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거나 흥분하게 하기도 하고, 고독하고 우울하게 하기도 한다. 추한 건물들은 시 환경의 공해이기도 하다. 교회건축은 교회의 사역을 보다 더 활력 있게 촉진시키고 그것을 기쁨으로 할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한다.
5) 장소성
하나의 건축은 하나의 특정한 장소에 자리하며 따라서 장소를 떠나서는 건축을 생각할 수 없다. 그곳은 자연이 보존되어 있는 그 한 가운데 일수도 있고, 도시의 한복판 일수도 있으며, 인간의 오랜 역사가 담긴 곳이기도 하고, 때로는 새롭게 형성된 간척지 일수도 있다. 건축의 질서와 조화의 문제는 건축 자체의 문제만이 아니라 바로 그 장소를 둘러싸고 있는 물리적, 인문적 환경의 기존 질서에 어떻게 조화 되는가 이며, 그 장소가 가진 역사를 어떻게 이어가느냐 이다. 교회건축이 예술이어야 할 뿐만 아니라, 교회가 독선자로서가 아닌, 선교로서 지역을 품어야 하는 하나님의 기관이라면, 더욱이 교회건축은 그 환경의 질서에 조화롭게 존재해야 한다.
6) 시간성
하나의 건물은 그 수명이 장기적이어서 시간의 흐름에 따른 인간의 생활양식의 변화 즉, 기능의 변화와 기술의 발전을 수용하여 적응해 가지 않으면 안 된다. 기능의 변화는 건물 내부의 공간적 요구를 변화시킬 것이며, 기술의 발전은 건축공간의 쾌적성에 대한 요구를 변화시킬 것이다. 따라서 건축은 그것이 지어졌을 때 완성되는 것이 아니고, 끊임없이 보수되고 개축되거나 증축되는 유기체이기도 하다. 또한 건축의 시간성은 사람의 건축에 대한 가치관과 그것을 감상하는 감수성의 변화와도 관계된다. 어떤 건물이 처음 지어졌을 때 그 새로운 공간과 형태에 사람들이 깊은 감동을 받았다 하더라도,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는 싫증을 느끼는 경우가 종종 있다.
상당히 많은 건물이 마치 유행처럼 일시적으로 시선을 끌다가 사람의 관심에서 사라져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건축은 시간을 초월하여 그 가치를 지속한다. 역사적으로 그 시대를 대표할 많은 훌륭한 건물들이 그런 건축이며, 이들은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귀한 예술작품으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다. 교회사역의 본질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질 때까지 변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방법은 세상 문화의 변화에 따라 함께 변해간다. 기독교인의 생각과 삶의 방식이 변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방법이 변하며, 선교방법이 변해간다. 교회건축은 그것이 존속할 수 있는 동안 교회 예술로서의 영속성을 유지해야 하며 동시에 이러한 교회의 변화에 적응해 가야한다.
7) 역사성
건축의 시간성과 관련하여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는 건축이 가진 역사성이다. 건축은 그 시대를 반영하는 총체적 산물이며 동시에 수 세대 또한 그 이상 사람들의 변화해온 삶의 근거지로서 당시 그들의 생활모습, 즉 인간의 문화를 담고 그것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이간의 역사를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현대건축의 경우 건물의 수명이 과거의 석조(石造)건축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짧기는 하지만, 요즈음처럼 빨리 변해가는 사회에서 100년의 수명도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닐 것이기에 건축의 역사성은 아직도 유효하다. 더욱이 새로운 건축이 과거 또는 기존의 건축으로부터 문화적 전통을 이어간다면, 그 가치는 건물의 수명을 뛰어 넘어 살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교회건축은 그 시대의 기독교 문화를 대변함으로써 후일 기독교 역사의 증거가 되며, 후세대에게 선조들의 신앙을 증거 해 주는 교훈이 되기도 한다.
8) 상징성
건축은 그 형태와 공간을 통해 메시지를 전하는 대중적이며 강력한 시각적 상징물로서, 시간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또 하나의 ‘언어’이다. 이러한 건축은 다른 어떤 예술보다도 드러냄의 속성이 강하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개인이나 집단들에 의해 자신의 정체성과 의지를 표현하기 위한 가장 손쉽고 강력한 수단으로 사용되어 왔다. 상징은 건축의 목적이나 기능을 건물의 형태를 통해서 알려주는 수단으로부터 공간 안에서 방향을 지시해 주는 ‘사인’(sign)으로서의 역할까지 다양하게 이용된다.
9) 사회성
건축이 다른 예술들과 다른 또 하나의 중요한 특성은 그 사회적 책임에 있다. 건물이 비록 어떤 특정한 개인이나 단체에 의해 소유되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소유자 이외의 많은 사용자들의 생활환경이며, 불특정한 사람들의 생활 또는 지각환경이기도 하다. 따라서 건축은 사회적 존재이며 강제성을 가진다. 아름답지 못한 건축은 시각 환경 공해가 될 뿐만 아니라, 인간의 정서를 메마르게 한다. 근래 청소년 또는 노인문제의 중요한 원인을 콘크리트 구조물들로 이루어진 고층 아파트단지의 비인간적 환경으로 지적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이다. 더욱이 한번 지어진 건물은 비록 그것이 잘못되었다 하더라도 그 경제적 가치로 인해 감추거나 없애버릴 수 없는 반 영구성을 가지고 있어 건축의 사회적 책임은 더욱 강조된다. 이는 교회건축에서도 마찬가지이다.
10) 교회 예술 환경 또는 배경으로서의 교회건축
건축은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다른 모든 예술의 환경과 배경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기도 한다. 교회건축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교회음악이 연주되고 불러지는 음악환경이며, 성극이 공연되고 무대이기도 하고, 조각과 그림 등 교회 미술이 설치되는 장소이며 배경이기도 하다. 설교에 적합하게 디자인된 예배실 안에서 파이프 오르간은 그 성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며, 복잡하게 디자인 된 벽면에 걸린 성화는 그 의미를 제대로 전달할 수 없다.
3. 한국 교회건축의 문제
그동안 우리 한국교회가 교회의 성장과 함께 지어온 수많은 교회당들 중에 예술적 가치를 지녔다고 평가되는 성공적인 교회당들은 흔치 않다. 그렇다면 그동안의 한국교회건축은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한 교회가 교회당을 건축하기 위해서는 최소 5년간의 교회 예산에 해당되는 엄청난 자금을 투자해야 한다. 따라서 대부분의 교회들은 교회당 건축을 결정한 때로부터 건축을 완성하고 그 빚을 모두 갚을 때까지 거의 10년 동안, 자금을 필요로 하는 다른 교회사역의 상당한 부분을 취소하거나 뒤로 미룰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교회건축은 교회사역을 위해 그만큼 가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다행히 최근 한국교회의 개혁운동과 함께 교회당 건축에 대한 인식도 크게 변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그동안 한국교회건축의 문제들을 살펴보고 교회건축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일 것이다.
1) 건축에 대한 잘못된 인식
그동안 우리 사회는 건축을 경제적 부의 창출 수단으로 이용해 왔다. 어떻게든 싸게, 빨리, 그리고 크게 지어서 많은 이익을 남기고 파는 것이 건축의 최상의 목표였다. 따라서 그 안전성이나 아름다움은 물론 건축의 가장 기본적인 목적인 실용성조차도 별로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이러한 건축에 대한 사회 일반의 생각들은 비록 사고 팔 물건은 아니지만, 교회당 건축에도 크게 영향을 미쳤다. 더욱이 그동안 한국교회는 아직은 경제적으로 열악한 상태에서 급성장에 따른 인원을 수용할 공간을 필요로 했기에 교회당을 잘 지어야 한다는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또 하나의 문제는 급속도로 경제성장과 함께 일어난 개발 붐으로 우리 모두가 건설을 쉽게 접해왔고, 따라서 모두가 건축을 너무나도 잘 안다고 생각하는 데 있었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건축설계란 관련법에 맞추어 몇 장의 도면을 그려 허가를 내어 주는 정도의 일이고, 시공은 건설현장에서 일해 본 경험 있는 사람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문제들은 교회건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교회건축의 특수성은 이러한 문제를 더욱 가중시켰다. 교회와 건축가들은 사용자와 설계자로서 서로의 필요와 역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즉, 교회들은 건축의 본질과 그 중요성을 이해할 만한 기회를 얻지 못했고 건축가들은 창조적 소명으로서의 교회 예술의 중요성을 생각하지 못했다. 교회나 건축가들 모두 필요한 공간의 크기를 충족시키는 ‘건물’(building)로서의 교회당을 생각하였으나, 예술 즉 ‘건축’(architecture)으로서의 교회당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으며 또한 교회건축이 목회의 환경과 도구로써 교회가 감당하는 하나님 사역에 미치는 대내외적인 영향을 간과해 왔다.
2) 교회건축 신학의 부재
한국의 많은 기독교인들은 교회당을 성전이라고 부른다. 중세의 서방 기독교로부터 유래되었고 구약의 성전과 개념적 연속선상에 있는 이러한 호칭은 사람들로 하여금 교회당을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하나님의 집’ 곧, 하나님이 임재해 계시고 예배 받으시고 인간과 교통하시는 집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이러한 생각은 오늘날 한국의 교회당을 크고 압도적으로 웅장하게 만들어 왔으며 값비싸고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최상의 재료로 교회당을 지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불러일으켰다. 뿐만 아니라 예배당은 성소이고 강단은 지성소이며 따라서 교회당과 세상의 구별이 아닌, 예배 공간 안에서 성직자의 영역과 평신도의 영역을 구별하는 공간배치가 일반화 되게 했고, 강단에서의 예전 가구들의 배열 또한 혼란스럽게 해왔다.
결국, 교회건축은 교회 예술로서의 창조성과 함께 교회론과 예배신학의 건축적 실천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축주인 교회가 설계를 담당하는 건축가에게 자신의 신학을 제시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건축가들은 신학적 실천적 교회론에 접근할 기회를 갖지 못한 채 교회에 대한 상식 수준의 정보만을 가지고 교회건축을 단지 건축론에 의해 디자인하게 된다. 따라서 이렇게 설계된 교회당이 교회 예술로서 교회를 올바르게 드러내거나 목회를 위한 훌륭한 도구가 될 수 없으며, 또한 예배신학에 합당한 예배공간이 될 수는 없다. 교회건축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건축가가 교회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그에 합당한 디자인을 할 때 이루어질 수 있다.
3) 교회성장의 수단화
오늘날 한국의 많은 교회건물들이 눈에 잘 띄고 호기심을 유발하는 형태에 관심을 가지고 따라서 설계 경기에 전 교인들의 인기투표를 하는 등 그 실용성이나 예술성 보다는 그 대중성과 유행 또는 가시적 목적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 또한 교회들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위해 가능한 한 다양한 성격의 공간을 최대한 확보하려 한다. 이러한 현상은 최근 한국의 많은 교회가 교회건축을 교회성장의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교회건축이 교회성장을 돕는다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나 다른 지역 교회들과의 경쟁 속에서 기성교인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교회건축을 수단으로 삼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며 교회건축을 교회예술로서가 아닌 단순한 도구로 전락시켜버리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비록 교회당이 교회 사역의 도구이어야 함은 틀림 없으나 그것이 시간성과 공공성을 가진 교회예술이어야 한다면 그 창조성은 또한 교회건축의 목적이 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4) 교회의 세를 과시하는 수단
역사적으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건축은 개인 또는 집단의 신분이나 권위를 나타내는 수단으로 사용되었고, 특히 권력자들은 대규모의 화려하고 웅장한 건물로 자기의 권력을 과시했다. 이러한 자기과시 욕구는 유럽 중세의 교회들도 마찬가지였고, 우리 교회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그 동안 교회당은 더 높고 더 크게 더 웅장하게 짓기를 원했다. 그러나 교회의 세상에 대한 태도가 세상문화를 지배했던 중세 기독교의 태도가 아닌 한, 이런 교회당의 모습을 교회가 지향할 바는 아닐 것이다.
5) 교회건축의 유행과 경쟁
우리 교회들은 지나치게 경쟁적이고 유행에 너무 민감하다. 교회당의 크기와 높이, 화려한 인테리어 등은 교회들끼리의 경쟁대상이며, 고가의 음향설비와 영상설비 그리고 수많은 특수 조명설비들이 마치 유행처럼 그리고 경쟁적으로 설치되고 있다. 교계 언론이나 기관들 그리고 일 년에 몇 번씩이나 개최되는 교회건축 관련 세미나나 박람회는 교회건축의 본질을 말하기보다는 오히려 이러한 경쟁을 부추겼다. 따라서 많은 교회들은 그 재정적 형편이 하나님의 여러 사역을 감당하기에 턱없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빚을 져가면서까지 이를 위해 막대한 헌금을 허비해 왔다. 더욱이 이들은 교회건축공간의 목적과 디자인과는 무관하게 선택되어 부조화를 이루고, 특히 예배공간은 마치 고가장비의 전시장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엄청난 돈을 들여 설치한 파이프 오르간은 예배공간의 음향조건이 적합하지 못하여 제 소리를 내지 못하고, 소위 인테리어와 가구들은 건축디자인과 통합되지 못한 채 교회당 전체를 부조화스럽게 만들고 상업시설 같은 인상을 주기까지 한다. 많은 헌금을 투자해야하는 이런 교회당 시설의 경쟁은 결국 교회의 본질을 훼손시키고 교회당을 교회의 세와 부를 자랑하기 위한 것으로 전락시킨다.
6) 장식의 문제
사람들은 꾸미기를 좋아한다. 특히 정성을 들여야 하는 경우 더욱 그렇다. 이는 교회 건축에서도 마찬가지다. 더욱이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교회당을 하나님의 성전으로 거룩한 장소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에 교회 건축은 더 좋은 것으로 꾸며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대부분의 교회들은 특히 강단을 여러 가지 요소들로 장식한다. 강단 벽에 높이 걸린 십자가와 특별히 장식된 제단, 말씀의 권위를 상징하기 위해 강단에 비해 너무 크게 만든 설교단과 그 옆의 사회단, 강단 뒷벽에 놓인 집례자의 의자들, 꽃꽂이, 화분들이 강단을 가득 메우고 있다. 강단 옆이나 위에는 교회행사를 알리거나 성구를 적어놓은 배너들도 걸려있다. 대형 영상 스크린과 천장에 매달아 놓은 특수조명기구들 그리고 모니터 스피커들은 이제 강단 위에 두어야하는 기본요소들이 되었다. 그래서 강단을 바라보면 빈틈없이 채운 성구들로 가득 차 있다. 이들은 회중들의 시선과 관심을 빼앗아 간다.
게다가 예배실의 천장과 벽은 인테리어 디자인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재료와 모양의 형상들이 설치되어 마치 재료와 디자인 수법의 전시장 같이 꾸며 놓는다. 그래서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요소들이 많다. 그러나 요소들이 많으면 그만큼 산만해지고 통일감을 상실한다. 더욱이 이들이 무질서하고 부조화스럽다면 각 요소들의 개별적인 아름다움은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다. 더욱이 이러한 모든 장식 요소들은 회중의 집중과 참여를 추구해야하는 예배공간의 본래의 목적과는 상반된다. 통일감을 상실하고 산만한 예배 공간은 오히려 회중을 불안정하게 만든다. 따라서 회중들의 마음은 산만해지고 예배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한다. 그래서 회중의 참여도를 떨어뜨린다.
예배공간 안에서 회중의 집중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그 초점이 분명히 드러나야 한다. 초점이 드러나려면 초점 이외의 다른 부분은 시각적으로 초점과 경쟁해서는 안 된다. 그것들은 모두 초점을 드러나게 하기 위한 배경이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그 배경은 재료와 디자인에서 단순해야 한다. 건축 공간에서의 단순함은 공간의 통일성을 만들어내며 회중을 예배에 집중하도록 도와준다. 따라서 예배공간의 디자인은 단순함의 미학을 추구하는 것이 마땅하다.
7) 모양의 문제
기본적으로 예술은 독창적이어야 하며, 우주만물을 아름답게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의 교회예술은 더욱 그러하다. 더욱이 건축은 기본적으로 그 목적과 사용자의 특성 그리고 부지 및 주변 환경의 특성에 맞추어 디자인 되어야 하는데, 건물마다 사용목적과 사용자의 특성이 다르고, 건물이 지어질 부지와 주변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건물의 배치로부터 공간구성과 형태가 모두 달라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다른 건물을 모방하여 건축하려하면 기능적으로 무리가 따르게 되고 형태고 이상해질 뿐만 아니라, 주변과의 부조화를 일으키게 되는 등 많은 문제가 야기된다. 혹자는 외부 형태만 모방하고 내부공간은 필요에 따라 기능적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매우 잘못된 생각이다. 왜냐하면 외부형태는 내부공간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며, 또한 건축은 그 시대, 그 지역의 문화를 배경으로 건축가의 의도 안에서 만들어지는 창작예술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창조적 소명을 받았다는 점에서 모방은 하나님의 창조 원리에 어긋나는 일이다.
8) 고딕양식의 문제
고딕양식의 교회건축은 중세에 시작되어 최근까지 오랜 세월동안, 전 세계의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많은 사람들에 의해 교회의 가장 이상적인 건축양식으로 추종되었으며, 현대 교회건축에서도 고딕의 이미지는 형태 디자인의 가장 중요한 모티브가 되어 왔다. 그만큼 중세 유럽에 지어진 고딕양식의 교회건축들은 적어도 교회건축예술로서 우리를 감동시키는 위대한 예술품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교회건축이 고딕이어서는 안 되는 이유는 건축학과 신학적 관점 모두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신학적인 관점에서 고딕양식은 그 세력이 극도로 확대된 교회의 권위의 상징으로서, 교회의 권세와 부를 드러낸 건물이었으며 교황을 중심으로 위계적 조직을 가진 단 하나의 보편적 교회로서의 로마 가톨릭 교회가, 그들의 희생제사로서의 미사의식을 통한 성례전 중심의 예배와 성직자 중심주의 그리고 당시의 유럽인들의 신비주의적 신앙 태도를 반영한 건물이었다. 그러나 현대교회는 중세교회와는 달리 교파마다 또는 교회마다 신학과 교리와 예식, 그리고 활동이 다른, 다양한 교회들로 구성되어 있다. 교회는 성직자 중심으로부터 평신도 참여의 교회로 변했고, 세상 문화를 지배하고 군림하던 교회는 이제 세상 속에서 세상을 섬기는 교회로 변했으며, 세상과 구별된 성소로서의 교회는 이제 세상을 향해 열린 교회로 변화했다. 예배는 성직자들만의 예배가 아닌, 만인 제사장으로서의 회중들이 하나님 앞에 동등한 자격으로 참여하는 예배가 되었고, 성례전 중심의 예배는 이제 개신교에서는 말씀 중심의 예배 또는 마씀과 성만찬의 균형 잡힌 예배를 추구하고 있고, 가톨릭교회에서 조차 설교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교회건축이 단지 기독교 교회임을 알리는 것만이 아닌, 교회의 본질과 그 사명을 세상에 드러내는 상징적 도구가 되어야 한다면, 당연히 현대 교회건축은 유럽 중세의 고딕 양식의 교회 건축과는 달라야 할 것이다. 우리가 건축해야할 교회당의 모습은 오늘의 교회의 문화와 사역에 합당하면서 동시에 현대의 건축 재료와 기술로서 이루어 낼 수 있는 최상의 교회건축 예술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9) 주변 환경과 부조화된 교회당 모습
한국 교회들이 열린 교회를 지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주변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독선적인 모습의 교회당들이 지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일반 건물들도 마찬가지지만, 도시에서는 지역 또는 인접 건물과의 조화를 고려하지 않고, 시골에서는 자연과의 조화를 고려하지 않는다. 그래서 교회당의 모습은 도시와 시골의 구별이 없다. 아직도 교회당의 높이와 크기는 대부분의 교회에서 추구하는 목표이고, 웅장함이 마치 아름다움인 것으로 혼동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교회당의 모습은 교회를 지역사회에서 이질적인 존재로 보이게 하여 그렇지 않아도 기독교에 대한 거부감이 확산되고 있는 오늘날 한국에서 지역 주민들로 하여금 교회에 대한 거부감을 느끼게 한다. 주변 환경과의 조화의 문제는 건축주인 교회의 문제이기도하지만, 설계를 담당하는 건축가의 책임이 더 크다.
10) 잘못된 상징과 이미지의 문제
교회건축에서 상징과 이미지의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자주 기독교적 상징을 위해 노아의 방주나 야곱의 사다리 같은 성경에 나오는 특정한 형태를 교회건축에 직설적으로 표현하려는 시도는 많은 문제를 야기 시킨다. 이러한 시도는 교회건축의 형태는 물론 그 기능이나 안전성과 경제성에도 상당한 문제를 야기 시킨다. 교회건축의 형태에 자주 적용되는 방주나 등대, 야곱의 사다리 같은 형태는 근본적으로 건축적 형태는 아니다. 물 위에 떠 있어야하고 물살을 가르고 나아가기 위해 기능적으로 만든 배가 땅위에 서 있는 것은 그 기능과 형태가 전혀 불일치하는 것으로 우리에게 호기심을 일으키기는 하나 부자연스러워 아릅답게 보이지는 않는다. 12제자, 8복, 4복음서 등과 같은 특별한 의미의 수를 의도적으로 형태나 공간에 적용하는 것도 교회건축의 창조성을 제약하는 것은 물론 실질적인 기능이나 구조에도 매우 불리한 영향을 줄 수 있다. 매우 위압적인 이미지나 폐쇄적인 이미지 또는 공격적인 이미지를 나타내는 교회 건물들은 사람들에게 기독교의 본질을 왜곡시킨다. 교회 건축의 상징과 이미지는 기독교의 본질을 표현하고 교회의 목적과 의도를 전달할 수 있어야한다. 그리고 상징과 이미지가 세상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을 위한 언어라면, 그 언어는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이어야 한다.
11) 열린 교회와 교회건축의 세속화 문제
최근 10여 년간 한국의 많은 교회들이 새 시대의 목회 비전으로 지역사회에 열린 교회를 지향해 왔다. 이와 함께 교회건축에서 가장 먼저 대두된 것은 지역주민들에게 교회 시설을 개방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교회 안에는 카페나 체육실, 문화 집회실 같은 공간들이 설치되어, 주일에는 교회의 용도로 사용하고 주중에는 지역주민에게 개방하고 있으며, 교회당의 형태고 과거의 고딕식 형태나 폐쇄적이고 위압적인 모습을 벗어버리고, 밝고 개방적인 모습을 취하기 시작했다. 주중에 비어있는 교회당의 공간을 지역사회의 다양한 모임과 행사들을 위하여 개방하는 것은, 관리상 어려움과 경제적인 부담이 따르겠지만 이를 선교적 차원에서 본다면 그만한 투자는 교회의 선교비 예산에서 충당해도 좋을 만큼 가치있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교회의 의도가 지나쳐서 교회의 본질을 잊어버리는데 있다. 최근, 문화시설이나 업무용 건물, 심지어는 이벤트 홀이나 체육관과 동일시 될 수 있는 교회당들이 건축되는 등, 교회의 본래의 기능보다는 세상의 기능을 먼저 강조하는 교회들도 있다. 이러한 현상을 세속화 신학의 입장이나, 리차드 니버가 분류한 그리스도와 문화의 관계에 대한 다양한 유형 속에서 설명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이를 교회 예술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12) 건축의 매너리즘적 현상의 문제
최근 한국의 현대건축에서 나타나고 있는 매너리즘적 포스트모던 형태들이 교회건축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것은 교회 예술이라는 관점에서 또 하나의 우려스러운 현상이다. 모더니즘 이후에 문학과 건축으로부터 시작된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의 합리성, 이성, 규범, 보편성에 반발하며, 비합리적, 감성적, 탈 규범, 변형, 대중성, 지역성, 역사주의 등에 관심을 보여 왔고 이는 오늘날 신학적 논의의 과제이기도 하다. 이러한 과정에서 포스트모던 건축은 변화하는 사회와 발맞춰 다양한 건축양식을 시도함으로써 건축의 창조성과 다양성을 추구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으며, 대중들의 건축을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임으로써 건축의 특정 부류만이 공감할 수 있는 문화가 아님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포스트 모던적 시도들은 건축의 본질적 문제들을 다루지 못한 채 주로 시각 형태적 디자인의 영역 안에 제한되었고, 대중의 기호에 영합하기 위해 지나치게 감각적인 것을 추구함으로써 키치로 평가되기도 했다.
오늘날 한국의 교회건축에 나타나고 있는 포스트 모던적 현상들도 이러한 평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그것은 실용적 또는 미학적 원리와는 무관하게 새로운 것을 찾는 대중의 기호를 쫓아 일그러뜨리거나 변형시키고 과장하고 현혹시키는데 급급하여 오히려 매너리즘적 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교회당들의 모습은 질서와 조화의 하나님의 창조 원리와는 거리가 멀며, 교회의 본질과 의도를 세상에 드러내야하는 교회예술로서의 교회건축과도 구별된다. 또한 특히 건축 예술은 다른 예술과는 달리 한 장소에 오랜 시간동안 서 있으면서 사용자만이 아닌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공공성이라는 측면에서 교회 건축가의 매너리즘적 태도는 사회적 책임을 도외시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4. 결론 : 교회건축의 미래의 과제
지금까지 필자는 교회건축의 미학과 실천이라는 관점에서 교회건축예술이 성립도기 위한 그 전제와 특성을 논하고 이를 근거로 현대 한국교회건축의 문제들을 살펴 보았다. 여기서 우리는 오늘날 한국교회건축이 진정한 교회예술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창세 이후 기독교는 본질적으로 변치 않는 하나님의 창조사역에 동참하고 있으나 동시에 이 사역은 시대적 지역적 상화의 변화에 따라 그에 적합한 방법으로 수행되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교회건축의 역할은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인간의 창조적 능력을 통해 교회의 본질을 지키면서 동시에 변화하는 사역의 방법들을 수용하고 그 시대 그 지역사회의 사역을 위한 훌륭한 도구가 되고 훌륭한 사역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따라서 미래의 교회건축의 실천과제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이 있다.
1) 하나님 백성 공동체의 기능을 위한 교회건축
△ 교회건축은 기독교 신학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예배공간은 예배신학에 합당하게 디자인되어야 한다. △ 교회의 모든 건축공간은 거기서 수행되는 사역의 성격과 활동특성 그리고 그 활동 주최인 회원들의 특성에 맞추어 디자인되어야 한다.
2) 하나님 백성 공동체의 표현으로서의 교회건축
△ 교회건축은 단지 교회사역을 위한 실용적인 건물의 차원을 넘어 교회예술로 승화되어야 한다. △ 교회건축은 기독교와 교회의 목적과 의도를 상징적으로 드러내야 한다. △ 교회건축은 지역사회에 개방적이고 그 지역 환경과 문화전통에 조화되어야 한다. △ 교회건축은 하나님의 역사의 증거로서 그리고 선조들의 신앙의 증거로서 보존되고 교회하여야 한다.
3) 미래사회의 변화와 미래교회 건축의 과제
△ 교회건축은 하나님 백성 공동체로서의 교회를 위한 공동체적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교회건축은 초월적이시나 또한 내재하시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분과 교제하기 위한 영성적 공간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 교회건축은 오늘날 위기를 맞고 있는 지구환경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환경을 보존하고 지속 가능한 건축환경을 조성하는 데 앞장서야 할 책임이 있다. △교회건축은 모든 분야에서 급속도로 변화해 가고 있는 미래사회에서 건축의 물리적 수명을 다할 때까지 그 변화에 적응하여 실용적, 미적 가치를 보존할 수 있도록 가변성, 융통성을 확보해야 한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자금을 필요로 하는 교회건축은 장기적 관점에서 올바른 경제성을 추구해야 한다. (2010.11.30.교회와신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