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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폭력에 대한공포... 형제가 돈을 요구

솔리스톤1 2010. 1. 3. 16:24

법륜 스님의 卽問卽說 18

아버지 폭력에 대한 공포

며칠 전, 새벽 기도를 하려는데 무서움이 밀려와 기도를 하지 못했습니다. 어릴 적, 저희 아버지는 어머니께 자주 폭력을 휘둘렀는데 갑자기 그 생각이 나면서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갑갑하고 눈물이 나면서 아버지께 맞아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 후론 새벽에 기도하는 것이 두렵습니다.

어려운 말씀을 잘 해 주셨어요. 먼저 편안한 상태로 자기 이야기를 충분하게 내어 놓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가슴 속에 맺힌 상, 상처받은 기억을 지우는 게 필요합니다. 우리는 어떤 사물을 접할 때 눈, 귀, 코, 혀, 또 접촉을 통해 상(相)을 가지게 됩니다. 특히 아주 어릴 때 부모가 심하게 싸워 무서운 아버지의 모습이 상으로 잡히면 뇌리에 깊이 새겨지게 됩니다. 이러한 자신의 경험이 자기 뇌리 속에 살아 있어서 그것이 마음속에서 재현됩니다. 재현될 때는 마치 지금 일어나는 일같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지금 질문하신 분이 참으로 괴롭고 힘들 것이라 짐작됩니다. 그런데 비디오를 되돌려 볼 수도 있고 지워 버릴 수도 있는 것처럼, 이렇게 쌓인 영상들을 수행을 통해서 지워 버릴 수 있습니다. 다만 충격을 받을 때만큼 무의식의 세계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어야 지워집니다.

이 질문을 하신 분은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 미움이 아주 깊이 맺혀 있습니다. 일차적으로 이것을 풀려면 아버지가 나한테 와서 과거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빌거나 그렇지 않으면 내가 아버지한테 분풀이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어느 정도는 도움은 되겠지만 이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도 아니고 가능하다 해도 무의식 속에 쌓인 것들이 말끔히 지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근본적으로 그 영상이 지워지려면 아버지에게 깊이 참회해야 합니다. ‘아버지가 참회해야지, 내가 왜 아버지한테 참회하나?’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요. 그러나 잘 생각해 보세요. 아버지의 행위가 나에게 깊이 상처를 주었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것은 나의 문제입니다.

아버지의 그 시절, 그 나이, 그 생활 형편으로 돌아가서 내가 아버지가 한번 되어 보세요. 사업은 안 되지, 빌려준 돈은 떼였지, 세상 온갖 것들이 다 자기 뜻대로 안 되어 화가 나는데 아내까지 그런 자기를 얕잡아보는 것 같단 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버지는 아버지 나름대로 저항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밖에서는 말도 못 하면서 집에 와서는 아내를 때리거나 욕을 하고 고함을 지르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지요.

이런 아버지의 입장을 살펴볼 수 있으면 ‘아, 아버지가 참 힘들었겠구나’하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 죄송합니다. 어린 마음에 아버지의 답답한 그 아픔을 제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깊이 참회하면 이 영상이 사라집니다. 이것은 밖의 아버지가 아니라 내 기억 속의 아버지가 이런 영상으로 남아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 나쁜 기억의 영상을 지우려면 내가 아버지에게 참회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고 그런 아버지의 아픔을 함께하고 그것마저도 사랑할 수 있게 되면, 내 속에 있는 이 영상이 점점 희미해지고 결국에는 지워집니다. 그렇게 해야 나의 정신도 건강해집니다.

그런데 기도를 할 때는 조금 풀어지는 듯 하다가도 실제로 아버지에게 가서 얘기를 나누면 과거의 두려움과 공포가 또 작동하기 쉽습니다. 그렇더라도 아버지께 가까이 가서 대화도 나누고 옛날이야기도 나눠야 합니다. 내가 정말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되면 내 마음속의 무서운 영상들은 사라지게 됩니다. 이런 미움과 증오의 감정이 내 속에 쌓여 있으면 내가 그것을 싫어하면서도 나중에는 나도 모르게 그 싫어하는 모습과 똑같이 행동하게 됩니다.

아버지가 술주정꾼이면 아들이 그런 아버지를 싫어해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하지만, 그 아들이 결혼하면 똑같은 일이 반복되기가 쉽습니다. 닮지 않으려면 씨앗을 제거해야 합니다. 생물로 말하면 유전인자를 바꾸는 것이지요. 유전인자를 고치는 것은 업장을 소멸하고 자기 인생을 바꾸는 것입니다. 이생에서 이런 내 업식을 소멸시키는 것은 자식에게는 이런 업이 이어지지 않도록 그 흐름을 끝내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을 내버려두고 참선하고 염불하고 기도한다고 해도 해결이 안 됩니다. 그래서 매우 깊은 정진을 하고 매우 깊은 참회를 해야 합니다

형제가 돈을 요구합니다
 
 

육십이 넘은 노부부입니다. 남편이 오래 전부터 돈을 벌지 않아 자식한테 용돈을 받아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는 시동생이 아프다고 병원비를 좀 도와 달라 하여 얼마간 도와주었는데 이제는 또 다른 것을 자꾸만 요구합니다.
저희 형편이 넉넉한 것도 아닌데 자꾸만 요구를 하니 짜증도 나고 주고 싶은 마음도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없는 돈을 자꾸만 달라고 하니 참으로 답답하겠습니다. 그런데 제 얘기를 잘 들어보세요. 정말 돈이 없으면 하나도 답답하지 않습니다. 왜 답답한가 하면 돈이 있기 때문입니다.
돈이 없는데 달라고 하니 답답하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렇지 않아요. 줄 수 있는 돈이 있기 때문에 답답한 거예요. 돈이 있다는 말은 내 수중에 돈이 있다는 얘기뿐만 아니라 꿔서 주든지 어떻게든 줄려고 마음만 먹으면 줄 수 있는 조건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상대에게 돈을 못 받을까봐 혹은 상대가 이래저래 보기 싫어서 돈을 주고 싶지 않기 때문에 돈 달라는 요구가 ‘번뇌’가 되고 ‘괴로움’이 되는 겁니다.

부도 위기에 있는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저 돈, 30조원만 빌려주세요. 곧 부도가 나는데 큰일입니다”고 말하면 어떨까요? 괴롭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도 괴롭지 않지요. “아이고, 저한테는 그런 능력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이렇게 간단히 끝나겠지요. 그 사람이 간 뒤에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시동생이든 시부모든 여동생이든 누군가가 당장 숨넘어가는 소리를 하면서 돈 100만원만 꿔 달라고 하면 괴로운 거예요. 줄려니 못 받을 것 같고 안 줄려니 욕먹을 것 같아서 괴로운 거예요. 줄 수 없는 사람은 하나도 괴롭지 않지요.

그게 뭐 어려운 일이에요. 주고 싶으면 빚을 내서라도 주고 주기 싫거들랑 집에 태산같이 있더라도 안 주면 됩니다. 그런데 형제, 일가친척, 친구 사이에 안 주면 욕을 먹을 수 있지요. 지금 묻는 이유는 돈도 안 주고 욕도 안 먹는 방법을 알고 싶다는 것입니다.

돈이 아깝거든 돈을 얻는 대신 비난을 감수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돈을 안 준다고 했을 때 상대가 욕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라는 것이지요. 상대가 욕한다고 “네가 나한테 돈 맡겨 놨나? 왜 나한테 욕을 하냐”고 생각하면 괴로워집니다. 그러니 “아이고 죄송합니다. 제가 마땅히 드려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이렇게 사과를 해야 해요.

반면에 욕먹거나 비난받는 게 싫고, 가정의 화목을 깨뜨리기 싫거든 빚을 내서라도 주세요. 질문하신 분은 욕도 먹지 싫고 돈도 주지 않는 방법을 찾고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머리가 아픈 거예요.

‘저 놀부 두 손에 떡 들고∼’ 그런 노래도 있잖아요. 그것처럼 질문하신 분이 괴로운 이유는 ‘놀부 심보’여서 그런 거예요. 그런 심보를 ‘흥부 심보’로 바꿔야지요.
둘 다 쥐려는 사람은 범부중생이고 둘 중 하나를 버리는 사람은 현인이고 둘 다 놔버리는 사람은 성인이에요. 성인의 길은 못 갈망정 현인의 길을 가는 게 낫겠지요. 돈을 주지 않으려면 비난의 과보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비난을 받는 것을 분하다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불자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정해져 있는 건 없어요. 이렇게 지으면 이런 과보가 오고 저렇게 하면 저런 과보가 온다는 것을 알려주는 게 불교에요. 선택은 내가 하는 것입니다.
여기 뜨거운 물이 있는데 누군가가 나에게 “손을 넣을까요, 말까요?” 하고 묻는다면, 손을 넣고 싶으면 넣되 손 데는 과보를 받아야 하고, 손 데는 과보를 받기 싫으면 넣고 싶어도 넣지 말아야 한다고 대답하겠습니다.    -법보신문-